사건과 묘사

학생들

김나무_ 2015. 12. 18. 01:52

 달리는 것과 그리는 것은 별로 차이가 없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 그렇다. 아마 너무 갑작스럽게 그리는걸 달리는걸로 바꿔서 그런가. 그림을 그리고 있어야할 시간에 달리고 있다보니 몸이 착각을 하는건가.

 아파트에서 나가면 바로 큰 길이 나오고 길을 따라 상가 몇개와 주차장으로 쓰는 공터가 나온다. 터에는 설비자재들이 쌓여있고 기와를 쓴 빨간 개집이 있고 개 한마리가 묶여 있는데 요새는 얘가 멀리서 날보면 이상한 춤을 추며 반긴다. 내가 다가가면 개는 푹 수그리고 눈을 감는데 그러면 나는 벅벅 긁어준다. 목줄이 세게 조여져 있어서 그 부분을 긁어주고 눈꼽도 좀 떼주고 등도 좀 긁어준다.

 동물은 바라볼때는 작아보이는데 만지면 크다. 눈도 동그랗고 콧등도 크고 털도 잘고 숨소리도 많고 혀도 길고. 내가 가려고 하면 막 무릎을 막아서며 가지 말라고 하는데 나는 손을 흔들고 간다. 개를 긁어주는 건 즐겁고 웃겨서 미소를 짓고 싶다면 개를 긁어줄 일이다.

 늦은 점심 혹은 이른 저녁을 먹고 소화를 좀 하고 나갈 때는 해가 기울고 있다. 멀리서 웃음소리가 들리면 학생들이다. 학생들은 대부분 비슷한 모습인데 뚱뚱한 패딩점퍼를 입고 여자애들은 가는 다리로, 남자애들은 뿔테를 쓰고 삼삼오오 간다. 오늘도 달리며 몇번 학생들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길거리에서 마음껏 웃을 수 있는 건 부럽다. 혼자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소리내 웃지는 못하니까. 개를 긁어주며 미소 지을 수는 있지만 개와 함께 떠들며 웃지는 못한다. 웃는 것은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 침묵도 마찬가지. 침묵은 웃는 것보다 조금 깊고 무겁다. 웃음이 분수 같으면 침묵은 떨어져 퍼지는 파문 같다. 그래서 사람은 사람을 만나나보다. 웃고 싶어서. 침묵하고 싶어서. 같이 흐르고 싶어서.

 달리다보면 뚱뚱한 실루엣의 흐르고 부딪혀 반짝이는 것들을 만나는데 어른은 부러워 말고 집 앞의 개를 쓰다듬어줄 일이다. 아이가 어른이 될 때 쯤에 개가 말을 하게 될지도 모르니. 그러면 어른이 된 학생은 개와 함께 서로의 외로움을 놀리며 킬킬댈 수 있겠지. 웃다 지쳐 자리를 깔고 앉아 검은 자국으로 고였다가, 아래로 아래로 달릴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