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장 가는 길, 하일지, 민음사

김나무_ 2015. 12. 19. 05:05

최근에 웹서핑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작가가 하일지다. 세계문학을 거론하면서 한국 작가를 얘기할 때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그래서 그의 처녀작을 읽어보았다.

부제를 육개장을 먹으며, 로 달아도 이상하지 않은 이 소설은 오해로 부터 시작해 오해로 끝나는 '꼬뮤니까시옹'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이야기' 자체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예술은 형식으로 부터 출발하는데, 이 소설은 소설은 무엇인가 이야기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게 생각했다, 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 느낌 수준인건 내가 소위 순문학이라 부르는 소설들을 많이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뭔가 다르다를 느낄 정도로 읽을 수는 있다.

재밌게 본 것은, 장소와 행위의 강한 반복이다. 한성장, 육개장, 르망, 대구 찬가와 같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일상. 그리고 점점 탈색되어 주제를 향해 다가가는 구조의 움직임. 그리고 관찰자 시점에서 막바지에 느닷없이 일인칭으로 바뀌는 부분. 그 부분은 마치 음악에서 도돌이표를 마치고 2소절로 넘어가는 곡의 진행을 연상케했다. 도미넌트 모션.

주인공의 이야기는 별로 재미 없다. 막바지로 가서 J의 부모를 만나는 부분은 너무 급작스럽다. 내용 전개가 아니고, 이를테면 1111111111111  111  111111  111111  111111111111111  1111111  11111 1 이런식으로 앞에서는 같은 소재를 다른 리듬으로 변주하였다면, 부모가 나오는 부분은 2나 3이 끼어든 것 같은. 앞에서는 J의 부모가 상징하는 한국사회의 인물상은 이전까지 그저 주인공이 관찰하는 대상이나, 배경으로 밖에 등장하지 않았는데 이에 해당하는 인물이 나오니까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는 거다. 음. 이를테면 배경은 카툰형식으로 처리하고 인물은 르네상스 양식으로 처리한 인물화가 있다고 하자. 그런데 갑자기 카툰형식으로 처리한 인물상이 등장하니 기존의 인물상과 조화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것은 내가 선악으로 인물상을 구분하는 장르소설의 형식에 길들여져 그런건지도 모른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