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책은 뭘까?

김나무_ 2017. 3. 10. 03:08

일년 육개월정도 원없이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안그래도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최근에 많이 들었다. 보통은 웹서핑하며 게시판에 올라온 잡담들을 읽었는데 가볍기만한 글들이 더이상 재미가 없어서. 아무래도 그림에 대해 이해가 깊어진 것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 몇년간 골방에서 그림만 그리면서 우울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잘되기도 하고 못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리면서 뭔가가 생기긴 생겼다. 규칙이나 습관들. 나는 그림을 그려도 되겠다, 하는 확신. 


그동안 읽어온 것은 틈틈이 머리를 환기시킬만한 것들. 지난 십년간 나에게 읽기란 그림을 그리느라 사라져버린 인간관계를 대신할 수 있는 대화록 같은 것이었지. 누군가는 말을 함으로써 위안을 받고 누군가는 말을 들으면서 위안을 받는다.나는 아마 후자.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평화로운 관계는 오래가지 않는다. 나의 대화는 일방통행이고 내가 관심을 끊으면 언제든지 관계는 사라진다. 한쪽이 변하면 다른쪽도 변한다. 내가 변해서 더이상 대화가 재미있지 않다. 잡담이 따듯하고 온화하게 들리지 않고 시끄러운 소음으로 들린다. 굳은살이 생기면 거기는 딱딱하지만 속은 더 말랑말랑해진다.


왜 시끄러운가 하면 글보다는 이미지가 많아져서 그런것 같다. 그런것들은 재미는 있지만 그 사람의 삶이 느껴지지는 않다. 어디서 적당히 짜집기해온 것들로 자극적이기만 할뿐이지. 그렇다고 글이라고 다르냐면 비슷하다. 인터넷의 글이란건 관심을 갈구하는 것들이라서 그 형식이 똑같다. 패러디와 변주와 광고. 아예 의미가 없지는 않은데 어떤 방탕하고 유쾌한 청년기의 모습이랄까. 젊음은 힘이 충만하니까 옆에서 빛을 쬐고 있는게 싫지는 않다. 너는 누구냐고 물으면 아마 나는 누군가가 멋지다고 생각해라는 대답을 할거야. 누군가를 동경하는게 정체성이지. 아 근데 피곤하다 옆에 두기는. 그러기엔 내 속이 말랑말랑해져버렸어.


이런 이유들로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내가 책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이렇다. 책은 저자의 노력이 들어가고 일관성이 있고 주제가 있고 시작과 끝이 있다. 글자수가 많다. 많은 글자들이 일정한 방향을 가리킨다. 노력이란건 방향의 정렬일까. 방향이 없는 경우도 있다. 글자들끼리 서로 부딪히며 떨어져나가거나 터지거나 할수도 있다. 글자는 나를 향해 날아오나? 저자는 나를 생각하고 글을 쓰나? 나는 어떻게 책과 만나지. 저자와 만날까. 게시판이 연회장이라면, 혹은 오리엔테이션이라면 책은 단둘이 술한잔 하는 거겠지. 둘 사이에서는 내란모의도 시시껄렁한 농담. 


그래도 너는 아마 네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애를 쓸거야. 애쓰는 태도는 매력적이지 않으니까 관심없는 척 하지만 사실은 나의 관심을 사랑을 몹시 갈구하지. 네가 아무렇게나 턴 재떨이 위의 재가 사실은 아주 교묘히 계획된 것이란걸, 그 때의 시간과 분위기를 적당한 신비로 포장한 주문이란걸. 좋아, 너는 내 관심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그래서 너는 누구냐? 너는 뭘 말하고 싶은거지? 너는 시간인가? 움직임인가? 너는 네 모습이 백년후에도 여전히 그 모습일거라고 생각하는거니? 바람이 부는 것처럼 옷은 낡고 살은 문드러지고 붉었던 피도 이제는 검다. 너는 찰나 내 시선을 붙드는데는 성공했지만, 찰나 네 시간에 스스로 사그라드는 것은 피하지 못했구나. 나는 네 주검과 수의에 새겨진 인형을 붙들고는 아 어떤 인간의 아들이 있었구나 발등에 입을 맞춘다. 독이 목을 타넘고, 나는 네가 턴 재의 문양을 해독하려고 유월에도 푸른 입술로 주문을 따라 읊는다. 현기증이 땀이 세상이 증기에 휩싸여 뿌옇게 보이고 나는 개구리를 백마리쯤 토해낸다. 비장한 얼굴로 이빨 사이에 낀 찌꺼기를 양치하고 혀를 박박 긁고 거품을 토해낸다. 거품은 주문의 모양으로 보글거리고 기포 하나하나에 담긴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방안에 낭랑하다. 하나의 종말로 거품을 씻어버리고 하나의 중독으로 시원함을 입에 물고 시간에 다져진 발 끝이 닳았다. 수의를 덮고 귀를 막고 잠을 자려는데 개구리 몇마리가 뱃속에 들어와 앉았다. 먹혀진 것이 먹었던 것에게 소화되는 시간에...


책은 아마 이런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