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재판을 받았다

김나무_ 2017. 3. 10. 23:11

재판을 구경가고 싶다는 생각을 몇번 한 적이 있다. 형사재판에서 피의자 자리에 설줄은 몰랐다. 긴장을 안할 줄 알았는데 긴장도 되고. 대통령 탄핵 선고가 시작되고 있는 순간에 나는 재판정으로 갔다. 검찰청은 왼쪽에 법원은 오른쪽에 있었다. 금속탐지기가 입구에 있어서 뭔가를 찾고 있었다. 통과하자 낮은 전류가 흐르는 소리가 났다. 안내 데스크에는 사람이 없었고 나는 복도에 붙은 표지판을 더듬어 108호를 찾았다. 들어가자 무언가가 진행중이었고 안내를 따라 관람석에 잠시 앉아있었다. 판사가 짧게 내 이름을 호명하고 나는 피의자 자리로 갔다. 서야할지 앉아야할지 모르는데 잠시 서있으라고 해서 서 있었다. 가장 높은 자리에 판사가 앉아있고 가운데에는 컴퓨터를 마주한 공무원 둘이 있고 왼쪽에는 검사가 앉아 있었다. 주민등록번호를 부르고 나서 나도 모르게 앉았는데, 앉으면 안되는지 물으니까 앉아도 된다고 했다. 검사 앞에는 오백장은 되보이는 서류뭉치들이 쌓여 있었다. 삼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이었는데 포니테일로 머리를 묶고 있었고 안경을 쓴 희미한 인상이었다. 검찰조사때에는 검사를 직접 보지 않아서 처음 보았다. 판사는 사십대정도로 유약하게 생긴 남성이었다. 내나이 또래의 양복을 빼입은 서기가 판사의 지시에 문서를 가져다 주었다. 그는 노랗게 염색을 하고 약간 튀는듯한 양복을 입고있어서 법정에서 유일하게 꾸미는데 신경을 쓰는 사람 같았다. 나는 추리닝에 후드점퍼를 입었다. 문서에는 내 범죄에 대한 증거자료 목록이 적혀 있었다. 목록은 19번까지 있었는데 내가 언제 어디서 무슨 법을 위반하였는가, 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들 조사를 받은 날짜들이 건조하게 적혀 있었다. 물론 그 안에 내가 왜 그랬는지, 동기에 대한 부분은 빠져 있었다. 판사는 처음부터 목록 끝까지를 천천히 읽고 난 후 이것들을 인정하냐는 뉘앙스의 질문을 했다. 나는 모든 것을 인정했다. 검사는 일년 유월을 구형하였다. 판사가 양심적 거부자가 아니냐고 물었고, 나는 그게 맞다고 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문서를 보내고 그러면 나중에 읽어보겠다고 했다. 선고기일을 정하기 전에 나는 치과 진료에 대한 얘기를 하고 선고를 늦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선고 기일은 4주후인 4월 7일 금요일 오전 9시 45분으로 잡혔다.

법정에서 나오니 날씨가 너무 따듯했다. 봄. 아마도 오늘 세상은 대통령의 탄핵 소식에 다른 뉴스들은 이야기가 되지 못하겠지. 하지만 여기 나의 이야기도 있다. 내 주변의 몇몇에게는 탄핵보다 가까운 이야기로 느껴지겠지. 재판을 받고, 선고기일도 잡히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선고 당일에 법정구속이 될 수도 있고 일주일 후에 자진 출두하게 될 수도 있다. 그 전까지 읽을 책들의 목록을 정하고 몇몇 사람들과는 연락을 하고 기다려야지.

공허한 마음을 수감생활에 대한 계획으로 채우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읽을 책을 생각하며 든 생각이다. 일년 육개월 가석방이 된다면 일년 이개월 정도. 출역을 하면 오전부터 저녁식사 전까지 일을하고, 출역을 하지 않으면 방에 갇혀 있는다. 하루 삼십분을 제외하면 운동도 하지 못한다. 책을 본다면 많은 책을 읽을 수 있다. 무언가를 하지 않으려면 또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다. 남아있는 사람들에 미련이 남는다. 

어떻게 할 수 없는일에 대해서는 생각을 멈추어야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생각하자. 참 춥던 겨울도 끝나지 않았는가. 이 또한 새로운 시작이겠지. 하던대로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