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편지

김나무_ 2017. 3. 20. 00:42

다들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그냥 저냥 지냅니다. 보름 뒤에 교도소에 가요.

공교롭게도 박근혜 전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가 있던 그 순간에 저는 형사 법정의 피의자석에 서 있었습니다. 형식적인 절차를 거치고 검사가 구형을 하고 선고기일이 정해졌어요. 그때까지는 답답했는데, 막상 날짜가 정해지니 마음이 편한 부분도 있습니다.

밖으로 나오니 날씨가 참 따듯했어요. 봄이왔구나.

아버지는 제가 사회를 경험해보지 못해서 그런다며 군대도 결국은 사회이고 사람 사는 곳이라고 하셨어요. 사람은 하기 싫은 일도 해야하고, 군대는 누구나 당연히 가야만 하는 곳이니까요.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지금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나중에 혹은 과거에도 당연한 것, 당연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인류의 역사를 관통해온 가장 중요한 가치는 평화라고 생각해요. 평화는 기독교의 아가페적 사랑, 헌신적으로 너에게도 베푸는 사랑, 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논어의 己所不慾勿施於人 (기소불욕물시어인),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 에서 오는 것 같아요.

평화를 원하면 내가 뭘 줄테니 네가 든 그 총을 내려놔, 할게 아니고 내가 총을 싫어하니 너에게 겨누지 않겠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순진한 생각이라고, 국제 정치는 리바이어던이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움직인다고 누군가는 말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인류는 실수를 반복하지만 동시에 실수에서 배운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세계대전과 이념의 대립 속 무수히 죽어간 사람들을 보며 평화는 결코 사상이나 무력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요. 냉전 시대에 두 강대국이 지구상의 문명을 모두 멸망시키고도 남을 핵탄두를 비축하며 군비경쟁을 할때에 우리는 무엇을 알았나요. 자유 한국당의 모 의원이 대통령 후보로 나오며 말한 공약이 핵보유국이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밖에 답이 없을까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무력에는 더 강한 무력으로?

전쟁은 승자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핵전쟁의 위험이 상존하는 한반도에서는 더더욱 전쟁은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탄핵 기각을 반대하는 일명 태극기 집회를 보면서, 저 분들에게 국가는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해 봤어요. 저에게 국가는 내 꿈과 가치를 실현해 나갈수 있는 구성원들의 사회계약체이죠. 국가구조 이전에 내 삶이 있어서 내 삶보다 국가를 위에 둘 수는 없어요. 하지만 어떤 분들은 우리는 애국심을 가지고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한몸 바쳐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국가는 곧 대통령이고 대통령을 잃는 것은 국가를 잃는 것이겠지요.

저는 국가를 생각하면 이 땅에서 수없이 자랐다가 스러져간 씨알들을 생각합니다. 저에게 몸을 주고 밥을 주고 말을 준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그걸 생각하다보면 내 앞의 미래세대에게는 내가 앓고 있는 긴장이 아닌 평화를 남겨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평화는 전부인게 아니라 최소이고 기초입니다. 무엇을 하던 기초를 바르게 하는게 첫번째죠. 그걸 하기 위해서는 내 몸을 지키는 무기를 내려놓을 용기가 필요합니다. 무기는 적을 향해 겨눠지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가장 비극적인 경우는 자기에게 향할때죠.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이 내가 아닌 너, 에게 적, 에게 총구를 겨누는 것이라 단언할 수 있을까요? 혹시 그 총구가 나 스스로를 향하여 겨눠진 것은 아닌지 분단 이전에 살았던 지난 사람들을 돌이켜 봅니다.

생각이 길어졌어요. 그림을 그리면 시간이 너무 빨리 가서 좀 천천히 갔으면 하는데, 올해는 빨리 가기를 바랄 것 같아요. 하지만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흐르겠죠. 봐주지도 않고 너그럽지도 않고. 올해 참 추웠던 겨울이 결국 끝나듯이, 봄은 올거에요. 나에게도 너에게도. 여기도 저기도.

다시 봄이 오면 같이 꽃을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