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4

억지로 꾸역꾸역

김나무_ 2012. 2. 4. 00:19
나는 글을 잘 쓰지 못한다.
워낙 주변에 글 쓰는 사람이 없다보니 희귀한 게 잘하는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나봐.

삶은 신기한 게 하나가 안풀리면 아무 것도 안 풀린다. 나는 고독의 시간을 원했고
고독의 시간을 가졌으나 생각보다 힘들다.

그러는 와중에도 나는 잘 웃고 잘 얘기하고 잘 먹고 잘 잔다.
좋아 하는 것이 좋아 했던 것으로 바뀌고 곧 잊혀진다.
새롭게 좋아하는 것이 생기지만 전보다는 조금 덜 좋아하게 된다.

조금씩 깎여 나간다.
쌀처럼, 껍질이 다 벗겨진 흰 쌀처럼 마지막으로 향하는 것은 달콤하나 깊지 않다.

일생을 긋는 감정선이 있다면 점점 가늘어 지고 있다.
처음에는 크고 굵고 뚜렷하고 붉었던 게 점점 바라고 있다.
 
예전에는 주저리 주저리 너무도 쉽게 밭을 갈았는데 요새는 돌맹이들이 먼저 보여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할 지 모르겠다. 어떻게든 시작을 하지만 땀도 나기 전에 멈춰 버린다.

나는 덜 읽고, 덜 보고, 덜 말하게 되었다.
과연 단단해지고 있는가?
글쎄...
하나 분명한 건 내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 둘 고장이 나서 쌓이기 시작했단 거다.
기능을 상실한 것들은 내 주변의 공간에 방치되어 나를 조여 온다.
 
그냥 그런 것들을 보면 고개를 돌리고 싶어서 다른 것들을 보지만 그럴 수록 눈이 멀고 있다.
그 와중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멍- 하다.
머리가 무겁고 졸리다. 뜬 구름 위에 올라타 있는 것 같다. 저 멀리 지평이 뿌옇게 가려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냥 천천히 그리로 간다. 

맞춤법에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확신이 서는 게 아무 것도 없다. 습관적인 행동들만 난무한다.
나는 또 담배를 핀다.

그러고 보니 예전 생각이 난다. 
사이버강의 시험이 있는 날이어서 더 뚜렷하다.
그때 나는 수중에 삼백원 정도가 남아 있었다. 담배를 피는 시기여서 담배가 고팠으나 담배는 진작에 떨어졌다.
시험은 아침 8시에 있었다. 공부도 딱히 하지 않아서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났다.
세상이 어두운 새벽 다섯시에 나는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 가는 길에 길을 두리번 거려 담배를 찾았다.
주워피는 담배는 역시 장초를 주워야 해. 미화원 아저씨가 아직 지나가지 않았는지, 장초 몇개를 발견하고
왼쪽 셔츠 주머니에 넣었다. 여름이라 춥지 않았다. 나는 주은 꽁초들 중 그나마 긴 것을 골라 피고 학교로 향했다.
그날은 토요일이어서  홍대는 금요일의 열기를 서서히 식히는 중이었다. 학교로 갈 수록 길에는 담배 꽁초들이
수없이 버려져 있었지만 줍지 않았다. 담배 한모금을 핀 직후에는 마음이 여유로워서 꽁초는 쓰레기로 보일 뿐이다.
나는 담배를 줍고 학교로 가서 시험을 쳤다. 시험 치기 전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돈을 꿔 커피를 마셨다.
시험은 잘 봤다. 한문젠가를 틀렸다. 즐거웠다. 아침 햇살은 뜨거웠고 실기실과 계단을 오가다가 집으로 가서 잤다.
뭘 먹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고등학교 때는 노래가 부르고 싶으면 집 앞의 너른 공터로 나가 마음 껏 소리를 질렀다.
공터는 공원이 들어설 예정인 부지였다. 지금은 호수공원이라고 부르지만 그 전까지는 똥방죽으로 불렸다.
낮게 고인 물에서는 이따금 잉어인지 뭔지 모를 물고기가 튀어 나왔고 나는 그걸 반주 삼아 노래를 불렀다.
겨울이 와도 나가서 불렀다.
기억이 나는 것은 비가 몰아치던 여름 밤이었다. 이어폰에서는 박정현의 위태로운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큰 우산을 썼지만 바람이 거세 허리를 굽히고 전진 할 수 밖에 없었다. 똥방죽 옆에는 다 지어졌으나 임대가 되지 않은 건물들이 있었다. 작게 튀어 나온 건물을 제외하고는 시야에 보이는 것은 모두 공터였다. 황량하기 그지 없는 어둠 속에서 나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건물 뒤로 숨었다. 바람을 피하기 위해. 이따금 옆의 작은 도로에서 헤드라이트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때의 나는 무슨 생각이었나.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노래를 잘 부르고 싶었지만, 녹음을 한 나의 목소리는 항상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노래를 부르는 순간, 아니 부른다기 보다는 그냥 소리치는 그 순간이 좋았다. 이따금 내가 부른 노래가 마음에 들기도 했다. 그렇게 노래를 부르다가 집에 왔다. 
살금 살금 발소리를 죽이고 현관문을 잠그고 떨어진 내 방에 들어와 차갑고 무거운 이불을 덮고 잤다. 시디피에서는 키스자렛의 Still Live가 흘러 나왔다. Someday my prince will come 을 가장 좋아했다.
여름이 지나 겨울이 오면 외벽 하나를 두고 바람이 너무 차가워 나는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어 쓰고 잤다. 아침에 일어나면 답답했지만 따듯했다.
나는 아침형 인간을 실천하기도 하고 학교 가는 길에는 일본어 공부를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