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십년전의 그날에 느낀 감정에서 시작된 것이다. 낮의 번화가에는 사람들이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학원까지 가는 골목에서 그 많은 사람들을 보며 내가 느낀 것은 나라는 개인의 상실이었다. 내가 여기서 사라져도 아무 상관이 없구나. 내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계에서 튕겨져나가 바라본 세계에 돌아갈 자리는 없었다. 물론 나를 아는 누군가는 슬퍼하겠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정말이지 낮은 밝았고 사람들은 어딘가로 움직이고 있었고 나는 버려진 옷가지마냥 슬리퍼나 끌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누구나 느낄수 있을법한 그 감정은 십년전의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재수중이었고 홀로 떨어져 있었다.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세상물정 모르는 약관의 청년이 거리를 보며 떠올릴 심상이 아니란 거다. 야망이라던가 향수라던가 부끄러움이나 호기심이 아니라 무덤덤한 비관.
그런데 나에게는 정말 돌아갈 곳이 있었던걸까? 나는 이상하게도 아무도 그립지가 않았다. 일년여간의 쪽방 생활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간단히 요약하면 이와 같을 것이다. "그는 일년간 서울의 한 고시원의 쪽방에서 지내며 학원과 방을 오가는 재수생활을 했다. 학원에서는 여덟시간씩 그림을 그렸다. 그를 보러 오는 부모나 친척은 없었다. 그는 즐겁게 재수를 마치고 대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끝." 그에게는 뚜렷한 목표가 있어서, 다른 것들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나? 아니다. 그에게는 목표도 없었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재수를 했다기보다는 딱히 재수의 생활이 나쁘지 않아서 했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대학에 가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의 방은 정말로 사라져 있었다. 재수 중에 집은 이사를 했고 방은 하나뿐이어서 동생이 쓰고 있었다. 다시 돌아가서, 머리가 맑지 않아 글이 산만하다, 나의 결여된 감정들은 어느 순간에 사라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란 생각이 든다. 왜냐면 나는 삼십년간을 살아가며 부모와의 기억이나 추억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내가 좋아하거나 오래 관계를 맺은 사람들은 편부모 가정이거나 부모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 내가 그런 사람들에게 끌린 것은 정확하게도 그들이 나와 닮아서였다.
그니까 그때 십년전에 나는 내가 아주 평범하고 정상적인 가정환경에서 나름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내가 아버지에게 갖고 있는 기억이란 맞은 기억이 대부분이다.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지만 엄격해서 도덕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폭력을 휘둘렀다. 내가 거짓말을 했다던가 자신의 권위가 통하지 않는다던가 할때. 그리고 아버지는 항상 밖에 나가 있어서 같이 보낸 시간이 많지 않다. 아마 내가 세달동안 일한 술집의 주방이모와보다도 말을 나눈게 적을 것이다. 삼십년 동안. 그리고 어머니는 굉장히 이기적인 사람이어서 자신의 몸매를 가꾸고 자신의 능력을 키우는 것들에만 집착해 있는 사람이다. 이타를 지향하는 아버지와는 처음부터 맞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내가 태어나고 같이 살게 된 것이다. 어머니에게 음식이란 그저 끼니를 때우는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고 언제나 가난을 벗어날 궁리만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심해서 정말 뭔가를 하진 못하고 신변잡기적인 행동들에만 머무를 뿐이었다. 어머니는 대학을 나오고도 모자라 나와 내 동생이 한창 자라고 있는 시절에도 또 방통대를 다녔다. 어머니는 항상 나와 내 동생에게 자유를 주었다고 그래서 자기는 다른 어머니들과는 다른 최고의 교육을 했다는 투로 말을 하는데 내 생각에 그것은 방종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어머니는 늘 자신을 특별한 사람으로 여기며, 평범한 아줌마들이 모여서 수다나떠는 그런 것들을 혐오했다. 헌데 그런 어머니야말로 관계를 맺는 것에 실패한 사람이었다. 나는 살면서 어머니의 친구를 본 적이 단 한번도 없다. 가끔 집에 들르는 어머니의 사촌이 유일하다. 근데 둘의 관계는 썩 좋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웃고 있는데 정말 웃기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해서다.
왜 나의 부모는 그런가를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아버지, 어머니 둘다 가난하게 자라 어렸을때부터 독립적인 생활을 했다. 그리고 둘은 사랑없이 나를 낳았고 아마 이건 내 생각일뿐이지만 사랑한 적도 없었을 것 같다. 적어도 어머니는 그게 확실하고-자기 입으로 그렇게 얘기했으니까- 아버지는 실수로 나를 가져서 책임을 진 것이다. 만약에 둘의 사이가 좋았다면 자신의 자라온 환경을 넘어서서 정말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서로가 노력을 했을 것이다.(나는 행복한 가정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밖으로 나돌고, 어머니도 밖으로 나돌고, 나와 내동생은 그냥 살았다.
나는 아무튼 무언가에 의지해서 자라야했고 주로 소설을 많이 읽었다. 주인공들의 삶에서 대리 만족을 느꼈다. 근데 정말 내가 어떤 영웅담의 영웅이 되고싶고 그랬다기 보다는 그냥 시간을 보내고 감정을 비우고 의지할 것이 필요한 것이었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그림이 좋아서가 아니고- 나는 그림을 싫어하고 경멸하는 부류의 인간에 가깝다- 그림그리는게 시간을 보내고 행위에 의지할 수 있어서 하는 것이다.
십년전의 그날에 내가 느낀 나의 상실은 그 당시에는 자명한 것이었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이상했는데, 결국은 그 배경을 알게 되었다. 알았다기보다는 늘 있던 하늘의 늘 있는 태양이 눈을 따갑게 한거지.
나는 나와 관계를 맺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내 부모가 나에게 했던 것처럼 나는 그들을 대했다. 그렇다고 내가 앞으로 사람들을 대할 때 다르게 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비슷할 것이다. 그럼 나는 그냥 죽어야하나? 잘 모르겠다. 그니까 나는 지금 특별히 화난 것도 아니고 슬픈 것도 아니고 예전처럼 상실감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다. 상실감이란 상실할 것이 있어야지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상실할 게 별로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앉아있는 의자는 동생의 의자다. 나는 내 방에서도 여기서도 혹은 어디서도 나의 자리를 찾을 수 없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과 이 글자들 속에서 나는 잠시 살아있을 뿐인데 그것도 잠깐의 흔적일 뿐이다. 잘 모르겠다. 어디선가 읽기로는 자살하기 전의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고 정리를 한다는데 내가 지금 그런 것들을 하고 있다. 나는 집을 치우고 쓰레기들을 버리고 내 주변에 있는 것들을 돌아본다. 관계를 맺는게 아니고 관계를 정리한다. 몸은 아프고 머리는 무겁고 해야할 일은 없다. 슬프거나 무섭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몇개의 감각과 몇개의 습관. 정리. 박제.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