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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3.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계인이 갑자기 나타난다 해도 놀라지 않을 마음이었다. K도 마찬가지였다. 집을 나섰을 때 옆집에서 밤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문 틈으로 비닐이 구겨저 삐져 나왔고 초록색의 액체도 드문드문 묻어 있었다. K는 지상으로 올라갔다. 지상으로 향하는 계단 끝에는 하얀 출구가 있었다. 그는 골목을 돌아 나갔다. 전봇대마다 가지런히 쓰레기 봉투가 배열되어 있었다. 그는 모든 쓰레기 봉투를 유심히 보았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 있던 작은 봉고차에 올랐다. 재생버튼을 누르자 기계음이 나왔다. 귀기울여야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그는 차를 몰고 천천히 골목을 운전해 나갔다. 차를 뭉갤듯이 골목의 벽들이 비좁아지기 시작하고 차의 철제 차체가 벽에 긁혀 쇳소리가 났다. 그는 더욱 세게 엑셀을 밟았다. 차가 더이상 전진하지 못할 때쯤 K는 뒷자석 쪽으로 넘어가 트렁크를 열고 내.. 더보기
2. 일반적으로 사람이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지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세달이라고 한다. 드르륵, 드르르르. 나의 경우에 적용해도 마찬가지다. 군대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이등병 때의 세달이고 복학을 하고 혼자 밥을 먹는데 적응한 것도 세달이 지나서였다. 드르르르륵. 드르. 두두. 신기하게도 세상의 일반적인 법칙들은 내 몸에 꼭 들어 맞는데 혈액형이라던가 손금이라던가 사주 같은 것들이 그렇다. 옷을 사더라도 내 몸에 꼭 맞춘 듯 나오고, 사랑얘기가 나오는 영화나 광고를 보면 꼭 내 얘기인 것 같다. 드르르. 그러나 이것은 내가 특별하다기보다는 뭐하나 특별할데가 없는데서 나오는 것 같다. 어쨌든 세달이라는 시간이면 적응한다는 말은 아버지가 들려주신 말이다. 아버지는 무슨 이유에선지 그 다음날 집을 나가셨다. 나로서는 구차한 변명 같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와 여동생과 나를 두고 아무 대책없이 떠.. 더보기
1. 그 때 쿄코는 변기에 앉아 있었는데 변기는 최신식의 비데로 시트 부분이 미지근했다. 출렁이는 소리가 나서 가랑이 사이를 보니 정액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최악이다, 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쿄코는 손거울을 보는데 그것은 프랑스의 2류 회사에서 나온 것으로 주변을 빙 둘러 큐빅이 박혀있었다. 며칠 전 문 밖의 남자가 선물해준 것으로 메이커는 기대이하였으나 핑크색이라는 것과 반짝거리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쿄코, 괜찮아? 아무소리도 안나길레……." 쿄코는 물을 내리고 속옷만 걸친 채 나갔는데 남자는 좁고 어두운 복도에서 일그러진 표정이었다. "왜그래?" "그냥 속이 좀 안좋아서 그래." 쿄코는 웃음을 터뜨리려다가 참았는데 처음 자고난 후 남자가 비밀이라며 꺼낸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넌 어디 안도망가네." "응?" "하고나서. 어디 안간다고." "그게 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