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내보이는 걸 정말 못한다. 좋게 말하면 허세가 없고 나쁘게 보면 욕심도 없다. 아무튼 블로그 주소도 노바디니까. (노바디하면 자꾸 노바디~노바디~ 밧츄 노래가 생각나서 이상해.)
아무튼 올해가 다 가는 마당에 잠깐 지난 몇년을 돌이켜보면, 나는 그림만 그렸다. 물론 딴 짓도 했다. 연애도 하고 알바도 좀 하고 기타도 치고 쓸데없는 말도 하고. 근데 내 삶을 관통한 건 그림 그리는거. 근데 이상한 것은 이 블로그에는 그림이 없다는 거다. 타블렛을 산 적이 있고 잠깐 타블렛을 가지고 논다고 몇몇 낙서를 올리기는 했다. 근데 다른 그림은 올리지 않았다.
보여줄때가 아니어서 설익어서 안올린게 아니다. 나는 그림을 못그리지만 나는 내 그림을 정말 좋아한다. 자격지심 때문이 아니고 올릴 필요를 못느꼈기 때문이다.
지금 쓰는 글은, 읽는 사람을 생각하고 쓰는 글이다. 아무튼 분열성 성격장애, 카테고리에 들어가 있는 글이니까. 나는 자기규정을 하는 행동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나를 규정하는 카테고리를 파고 글을 쓰는 이유는 공감을 사기 위해서. 혹은 주기 위해서. (계산적이다.) 나는 공감을 잘 못한다, 라는게 어떤 종류의 사람들하고 공감할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인 것은 역설적이지만 하지만 어쨌든 그렇다.
잠깐 더 과거 얘기를 하면, 나는 중고등학생 시절에 항상 하드보드지를 덧댄 스프링 노트를 들고 다녔다. 천원짜리 연습장 네다섯권정도 합친 두꺼운 노트. 나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고(판타지 소설가) 항상 글을 썼다. 어떤 장면의 묘사라던가 생각의 주절거림, 독백 그런것들. 열심히 썼다. 어느 순간 글을 못쓰겠다는 생각이 들어 글을 그만 쓰고 그림을 그리게 되었을때 노트도 자연스럽게 떠나갔다.
아마 이 블로그는 그 노트의 연장선에 있는 것 같다. 그림을 그리면서도 노트를 몇권 산 적이 있으나, 대부분은 쓰지 못했다. 나는 연애하느라 바빴고 그림 그리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노트를 자꾸 잃어버리고, 한두장 쓴 노트들이 틈에 처박혀있다가 점점 사용할 수 있는 책상의 공간이 좁아지면 대청소때 다 가져다 버리고, 그짓을 반복하다보니 노트를 더이상 살 수 없게 되고-어차피 쓰지도 못할텐데- 그러다보니 블로그라는 공간을 찾았다. 아무튼 그림을 그려도 글을 쓰던 습관이 남아 있고, 어떤 감정은 글로 풀어야 하니까.
그래서 나의 블로그에는 단문이나 주절거림 나에게서 출발해 나에게 돌아오는 글이 전부다. 다만 늘 글을 쓸 때마다 어떤 생각이 드는데, 이유는 글쓰기의 설정이 기본이 '비공개'로 되어있고 나는 그걸 '공개'로 바꾸기 때문이다.
음. 뭐라고 해야할까. 내 블로그는 일기장에 가깝다. 나는 딱히 관심을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관심을 피하는 쪽이다. 처음에는 글 쓸 공간-노트의 역할-이 필요했고, 블로그에 글을 올리게 됐고, 지금은 습관이 되었다. 노트에서 블로그로의 완전한 이사. 근데 블로그는 공간의 특성상 아무나 찾을 수 있고 아무나 읽을 수 있다. 물론 사람들은 지나가는 행인들, 버스에 붙은 광고, 나무에 걸린 현수막 따위를 유심히 보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내 블로그를 찾는 뜨내기 손님들은 대부분 아무 그림도 없고 재미도 없는 블로그를 들여다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어의 사용자들은 성미가 급하니까.
근데 이것은 반대로 떠나지 않고 내 글을 읽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진다. 이런 재미없는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누구고 그런것이 중요하지는 않다. 다만 나는 작은 책임을 느낀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