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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성 성격장애

우울?

엄마와의 관계가 좋아졌다. 덕분에 엄마로 인해 우울하던 것이 사라졌다. 놀랍다.

2년이 걸렸다.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엄마가 엄마 스스로를 고통스러운 상황으로 자꾸 몰고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쌓여서 나나 동생 아빠에게 감정을 푸는 것이 이해가 안됐다. 엄마는 친구가 없다.

가족은 더이상 가족이 아니었고 이것에 대해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게 너무 우울했다.


만약 엄마의 천성이 비열하고 어두워서 성질을 부리는 것이라면 차라리 이해가 간다. 

근데 엄마는 천성이 마음이 여리고 동정심이 많다. 다만 너무 소극적이어서 표현을 잘 못한다. 

어쩌다 표현할때는 그동안 쌓아둔 것을 한번에 풀어 버린다. 

말로 하면 될것을 자꾸 멋대로 상상을 해서 김칫국을 마신다. 

당신의 생각과 상대방이 행동이 맞지 않을때 상대방을 공격한다. 신랄하게 감정을 실어서.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당신 스스로는 상대방에게 이만큼 배려를 했는데 상대방은 왜 자기만큼 배려를 하지 못하냐는 식이다. 

그냥 처음에 말한마디면 될것을. 그 말을 못해서 쌓고 또 쌓고.


엄마를 이해한다. 

엄마는 국민학교를 나오고 중고등학교는 검정고시를 봐서 대학에 갔다. 친구들과는 일부러 어울리지 않았다. 

그 시간에 자기개발에 열중했다. 덕분에 엄마는 얻은 것도 있고 잃은 것도 있는데 사람들하고 대화하는 법을 잃었다. 

당연히 가족하고도 대화는 없다. 그냥 한껏 마음에 담아두다가 신경질 부리는 게 전부지. 

아빠는 엄마의 이런 성격에 일찌감치 학을 떼고 대화를 포기했다. 그리고 밖으로 돌았다. 


나와 동생의 분열성은 여기서 기인하는 걸거다. 자랄때 부모님과의 정서적인 교류가 없었던 것.

그걸 나는 책으로 채웠던 것 같다. 이건 올라가면 할머니네랑 외할머니네하고도 연결이 된다.

두분 모두 부모와는 정서적인 교류가 없는 환경에서 자랐다. 모두 어린나이부터 타지생활을 했다.

아빠가 왜 그렇게 사업?에 열중하고, 엄마가 자기개발에 열중하는지도 이해가 간다.

대물림 되는건 생김새뿐만이 아니다.


말싸움을 하는 것도 결국에는 대화하는거라서 엄마랑 대화도 많이 했다.

내가 이 카테고리를 판 것도 엄마랑 싸우고 우울해서 만들었는데, 지금은 전혀.

애초에 나는 우울하고는 정반대에 있는 사람이다.

우울한 음악을 좋아하긴 하지만. 


전에 그림그리는게 내 안의 분열성을 강하게 할거라고 생각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그때는 우울해서 비관적인 전망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분열성이 장애수준까지 이르러서 숲속에서 움막이나 짓고 살거라고 생각했다.

뭐, 지금은 괜찮다. 여전히 몸은 아프지만 나는 아픈 것도 내 몸을 관찰하는 계기로 생각할정도로 긍정맨이다.


생각해보면 나의 긍정은 유별나다. 나는 가난하게 자랐는데 한번도 가난을 의식한 적이 없다. 

왜냐면 나는 물욕이 정말, 너무 없기 때문이다. 아마 분열성의 특징인 것 같다. 

내가 관심있던거라야 책이 전부고, 그건 사진 못하더라도 빌려 볼 수 있다. 나는 책을 갖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한번도.

초등학생 무렵에는 인터넷이 보급되어서 필요한 정보들은 전부 인터넷으로 찾아볼 수가 있었다. 


맛있는 걸 먹고 싶다거나 유행하는 옷을 산다거나 하는 생각자체가 없었다. 

나는 항상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을 했는데 그것은 돈이 안들었다. 

음악은 mp3 로 들었는데 어렸을 때 저작권의 개념이 있기나 한가.

그건 둘째치고 나는 음악을 좋아하지 아티스트를 좋아한 적은 없다. 따라서 시디를 모은다던가 하는 생각도 없다.


대학에 들어가고 연애를 하면서 내가 가난하게 컸다는걸 처음 알았다. 

그때까지 나의 경제 관념이란 만원이 넘으면 비싼거! 옷은 엄마가 사다주는거!

내가 가난을 판별하는 기준은 이렇다. 계절이 바뀔때마다 옷을 사입는 환경에서 자랐으면 부유한거다.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예뻐보이려고 옷을 사는데 부모님이 별소리 안하고 돈을 주면 부유한거다.

다이어트를 위해서! 약을 지어먹거나 헬스장을 다니는데 부모님이 돈을 주면 부유한거다. 흐흐.

물론 나도 정말 가난한 건 아니다. 왜냐면 등록금을 부모님이 내주셨기 때문이다. 방값도. 용돈도 주셨다.

이건 대학때고. 이때는 집안 경제사정이 조금 풀려서 가능한 것이었다.

그전에는 그냥, 생존!


연애를 하면서 신기했다. 사람이 굉장히 많은 곳?에 돈을 쓴다는 걸 알았다.

꼬박꼬박 머리도 스타일있게 다듬어야되고, 옷도 다양한 스타일로 사야되고, 맛있는 간식도 먹어야 되고, 외국어 학원도 다녀야 되고, 아메리카노도 먹어야되고-나는 카푸치노나 에스프레소따불!-, 극장가서 영화도 봐야되고.

재미있었다. 일주일에 며칠 알바를 하고 번 돈을 전부 다 썼다. 용돈도 쓰고. 배고프면 야식도 시켜먹고. 홍대 주변의 식당들은 다 가봤다.

고리오 영감에 나오는 청년처럼, 나는 새로운 문화에 눈 떠서 이것저것 구경하느라 바빴다.  

차이라면 청년은 사교계의 총아가 되고 싶어했고 나는 그냥 구경에 만족한 것. 

나도 흉내는 내봤지만 금새 원래대로 돌아간다. 


다행인 것은 내가 나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거다. 덕분에 어느정도 나(가족)와 밖의 차이를 인식할 수 있어서 집에 가서 우울해지는데 도움이 됐다. 

우울한게 왜 도움이냐면, 사람은 문제를 인식한 순간부터 그걸 해결하기위해 살아간다고 생각하기때문이다.

문제는 머리로 인식하는 게 아니다. 몸과 마음의 고통으로 부터 인식한다.

대학에서 돌아와 집에 왔을때 나는 나와 가족과 엄마 아빠에 대해서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게 나를 너무 우울하게 했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게.


뭐, 별 수 있나. 엄마랑 오래, 아주 오래 격렬하게 싸웠고, 부모는 자식한테 이길 수가 없다.

엄마가 앞으로 여유있고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


나는 우울함을 계기로 내 안으로 파고 들어갔고 분열성을 깨달았다.

분열성은 좋다. 창작할 때 굉장히 좋은데 창작은 고독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다만 현실하고의 거리감각이 쉽게 무뎌지는게 문제다. 너무 강하게 집중해서 시간을 까먹는다.

그건 또 이런 식으로 글을 쓰며 보완해야지. 맘에 드는 사람들하고는 연락도 하고.


밝혀져야할 것들이 아직 남긴 했지만, 차차.

밤은 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