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에 살던 시절이다. 아마 일요일이었을 것이다. 날은 밝고 흐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건물 앞에서 한 사람을 만났는데 이십대 중후반 삼십대 초반 정도의 남자였다. 행색이나 목소리나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는 나에게 같이 맥주나 한캔 마시자고 했던것 같다. 왠지 간절하면서도 길가의 개같은 두려움이 있었다. 나는 거절했다. 나는 그때 술을 마시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한 십년쯤이 지난 지금 노래를 부르다가 문득 그 기억이 다시 생각이 났는데- 종종 나곤 했다-, 왠지 그 기분이 이해가 된다. 그사람은 살아있나 죽어있나. 고시원을 떠난 후에도 나는 그 길을 몇번 걸었던 적이 있는데, 고시원 아래에는 내가 좋아하는 헌책방이 있고 공사중인 낡은 철도가 있고, 물론 그 사람은 없다. 어디선가 다른 누군가에게 맥주를 권하는 혹은 이제는 권해받는 처지가 돼 있을 것이다. 고시원은 후에 알퐁소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이는 원장의 세례명이다.
2015/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