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에 대해 생각하는데 선고 기일에 애국가를 부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법정모독죄 뭐 이런게 붙으려나. 내가 학습한 국가는 여러가지일테지만 애국가는 참 교묘하게도 입에 붙어 있다. 첫음을 잡으면 나머지는 저절로 틀어진다.
아빠에게 재판 날짜를 말해주었는데 아무 대답도 듣지 못했다. 이제는 예전처럼 매일 볼 수 없는 엄마는, 이제 얼마 안남았네, 했다. 응, 엄마. 얼마 안남았지.
나는 동생과 먹을 고기를 볶았고 동생은 그릇을 씻었다.
병이 저절로 차지는 않지만, 저절로 엎어지기는 한다. 깨지리라 생각해 던진 컵은 깨지지 않고 그림그리는 동안 살그머니 떨어져 깨졌다. 그러면 컵의 밑면 조각을 들어 국적을 확인하는데 나의 국적과는 다르면 안도하고 욕을 할 수 있다.
동~~해~~ 물~~과~~
동생은 참다참다 자기가 밥을 준비한다. 내가 그림그린다고 끼니를 거를때에. 동생은 나도 먹을거냐고 묻는다. 나는 그때면 컵을 치우느라 정신이 없어서 건성으로 먹겠다고 한다. 조각을 신문지에 싸는데 신문은 보지는 않지만 어제의 날짜로 하자. 그것은 낡은 것이고, 어제의 신문만큼 오늘 쓸모가 없는 것은 없으니까.
엄마가 신던 슬리퍼를 억지로 신고 조각을 모으고 청소기를 돌리고 쓰레기통에 넣고 다시 그림을 그리는데 밥을 먹으라고 동생이 부르기 전까지 내내 슬리퍼를 신고 있다가 식탁 밑에 대충 벗어둔다. 엄마는 슬리퍼를 중문 옆에 두었는데 가끔 청소기를 돌릴때면 나는 신발을 들어 옆으로 옮겼다. 슬리퍼는 십년은 넘은 것 같은데 내가 신기에는 사이즈가 작다. 내가 신었더라면 진작에 찢어졌을 슬리퍼는 엄마의 발에는 맞았을테고 엄마처럼 늙으며 이곳저곳 낡기는 했지만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슬리퍼는 딱딱한 돌기들이 달려 있어서 지압이 되고 파스텔 톤의 꽃무늬가 발등 덮개에 그려져 있지만 자세히 본 적은 없다. 나는 엄마를 벗어서 식탁 아래에 내팽개치고 끼니를 먹는다. 어딘가 숨어있을지 모를 컵의 조각이나 엄마의 발등 보다도 나는 끼니가 중요한 것이다.
백~~두~~산~~이~~
밥을 먹으며 무언가를 보며 누군가에 대해 욕을 한다. 동생은 잘 듣는데, 그것은 그가 동생이기 때문이다. 판사는 높은 곳에 검사는 맞은편에 서기는 가운데에 앉는 것처럼 나에게는 주어진 자리가 있고 거기에 가서 앉는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컵은 떨어지고, 아쉬워할 일은 없다. 내가 퇴장하는동안 기다리고 있던 누군가는 내가 서있던 자리에 가 설테고 그는 새로운 형 노릇을 하며 동생에게 동생이 모르리라고 생각하는 컵의 국적에 대해 신나게 떠들 것이다.
참, 그런 것들은 얼마 안남았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모든것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컵을 책상의 중앙에 여유있게 둔다던지 하는 것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물건들은 마치 자기가 거기서 한 역할을 부여받은 것처럼 책상을 좁혀오고 나는 빈곳을 찾아 컵을 두는데, 이제 컵의 역할은 떨어지는 것이다. 되도록이면 아무도 모르게 스윽하고.
마르고~~
같은 색 옷을 입으면 같은 사람으로 보이겠지. 그안에도 무늬라던지 국적이라던지 하는 세세한 결이 있을테지만, 그것은 형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형은 언제나 무엇을 부수는 사람이고, 깨지는 것에 아랑곳 하지 않으니까. 형은 엄마와 결이 맞고 아빠와는 맞지 않다. 그래서 아빠나 형 둘 중 누군가가 말을 시작하면 다른쪽은 입을 다물어야 한다. 4월 7일에도 그랬지. 판사가 말을 하는 동안 형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형은 살짝 고개를 돌려 우리쪽을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스트레칭을 하기도 했다. 형은 아직은 형처럼 보였는데 그건 형이 항상 입고있던 회색의 후드티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닳도록~~~
판사가 묻고 형은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검사석의 위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에는 벽에 덧대어진 나무밖에 없어서 무언가를 보기보다는 차라리 아무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는게 맞겠다. 관람석에서는 약간의 소동이 있었고 제복을 입은 경관은 판사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형의 노래가 후렴으로 넘어가기 전에 판사는 피고인에게 어떤 대답을 종용했다. 그건 대담을 함으로써 노래를 멈추게 하기 위함이 분명했다. 형은 더 할말은 없다고 했다.
하느님이~~~~
다행인건 내 앞에 있는 동생이 아직은 나를 알아본다는 것이다. 내가 파란 옷을 입고 유리벽 너머에 있다고 해도 아직은 그의 형이다.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아마도 나는 떨어지고 있는 중이고 그걸 깨달았을때는 어제의 신문을 준비해야하고 어제는 그저께보다도 더 쓸모가 없다. 형의 역할은 누군가가 대신할테고, 내가 즐겨쓰던 기능에는 먼지가 쌓이겠지. 나의 국적은 의식에서는 사라지지만, 피부처럼 달라붙어서 어딜가나 이름대신에 숫자로 불리우겠지.
보우하사~~~
엄마가 아빠를 잊고, 형은 엄마를 잊고, 동생이 형을 잊는 과정은 착실하게 진행되었다. 형은 재판에 가기전에 식탁 아래에 있던 슬리퍼를 꺼내 중문옆에 가지런히 모아 두었다. 동생은 형이 쓰던 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그때까지도 아빠는 말이 없었고, 엄마는 멀리서 울었다. 몇명의 사람이 감옥에 가고, 남겨진 몇몇이 그리워했다.
참, 우리나라 만세다. 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