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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묘사

시 쓰는 친구와의 대화

우리는 이삿짐이 널부러져있는 새집냄새가 나는 방에서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문단의 뒷얘기나 여자얘기, 월경얘기, 호르몬얘기

30대가 되면 할 법한 이야기들을 했다.

 

근데 시집을 많이 보면 시를 잘 쓰게 되냐?

 

친구는 시가 오기를 기다리는 시인이었다.

시인의 수만큼이나 시에 접근하는 방식이 많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두줄 넘어가는 문장을 잘 쓰지 않던 친구는

좋은 시는 쓰는게 아니라 발견하는 거라고 했다.

 

시집을 많이 보면, 좋은 문장과 아닌 것을 더 쉽게 구별할 수가 있죠.

 

그게 무슨 말이지?

 

그니까, 시를 쓰다보면 나는 굉장히 좋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저 그런 문장들...

그런 걸 쉽게 골라 낼 수 있단거죠. 다른 좋은 시들을 봄으로써.

 

경제적인 효율을 말하는건가? 

 

그런 것도 있고. 자기가 쓸 수 있는 문장이 20~70 이라고 할 때에 50 이상은 써야

그게 시로써 가치가 있는데, 좋은 시들을 많이 보다보면 그 기준이 조금씩 올라가고... 뭐 그런거죠.

 

시를 잘 쓰는데 직접적인 영향은 없다는거네?

 

뭐, 그게 그말이라...

 

나는 내 태도를 강변하는 걸 멈췄다.

나는 시에 있어서 진지하지 않기 때문에 무시한 것의 쓸데없는 질문이 걔를 귀찮게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친구는 애인과의 문제 때문에 짜증이 한껏 난 상태였다.

새것들과 새것들이 담겨있던 껍질들이 적당한 위치에서 뒹굴고 있었다.

나는 거기에 보태 파이프를 피웠다.

 

나는 새것인가 껍데기인가? 시인가 시인인가?

연기를 맡으면서 좋은 책을 발견하기 위해, 좆같은 책들도 봐야하는 인생에 대해 생각했다.